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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역사 43편 화폐의 발달 과정 서양 중세사5 프랑크 왕국의 분열 - 서양 중세사5 카롤루스 1세는 자신의 사후 제국을 분할하여 모든 아들에게 나누어 줄 계획을 세웠으나, 막내 아들 루트비히를 제외한 세 아들이 요절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813년, 아헨에서 루트비히가 공동황제로 선출되었고, 그는 유일한 후계자로 인정받았다. 이후 카롤루스는 은퇴하여 아헨에서 여생을 보내다 814년 1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루트비히 1세는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후, 자신의 아들들에게 왕국을 분할 상속하기 위해 아버지의 서자들과 결혼하지 않은 여자 형제들을 수도원으로 보내버렸다. 817년에는 제국 칙령을 발표하여 장자인 로타르를 후계자로 정하고 공동 황제로 로타르 1세로 선포했다. 둘째 아들 피핀은 아키텐 왕으로, 셋째 아들 루트비히는 바이에른 왕으로 임명되었.. 2024. 8. 11.
금융의 역사 42편 화폐의 발달 과정 서양 중세사4 바이킹의 건국사 - 서양 중세사4 885년 11월 24일, 서프랑크왕국의 파리는 바이킹의 습격으로 공포에 휩싸였다. 서프랑크왕국은 843년 베르됭 조약에 의해 세분화된 프랑크왕국의 일부로, 그 이후로 대규모 공격을 자주 받았다. 특히 845년에는 120척의 배와 5,000명의 전사가 파리 일대를 약탈해 금 2,570㎏을 요구하며 물러간 사건이 있었다. 860년에도 세 차례의 침공이 있었고, 이로 인해 막대한 공물이 갈취되었다. 바이킹의 주요 목표는 내륙 도시의 약탈이었다. 센강을 따라 위치한 작은 도시 파리는 그들의 의도에 맞는 전략적 위치였다. 바이킹은 4만 명의 전사와 700척의 선단을 동원해 한꺼번에 공격했으며, 센강의 강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규모로 움직였다. 그러나 방어군은 겨우 200명에 .. 2024. 8. 10.
금융의 역사 41편 화폐의 발달 과정 서양 중세사3 중세의 특징 서양 중세사3중세 시대 서유럽에서 농노들은 하루의 70%에 이르는 시간을 영주를 위해 노동하며, 남은 시간에야 비로소 영주에게서 빌린 자신의 땅을 경작할 수 있었다. 영주는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고, 농노들은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살아가며 항상 도망칠 방법을 고민했다. 초기 장원을 탈출한 이들은 농사에 종사하는 농부가 아니라 수공업자들이었다. 수공업자들은 땅이 없어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농부들보다 쉽게 장원을 떠날 수 있었다. 이들이 도망친 곳도 왕이나 영주, 사원의 장원이었지만, 그곳은 원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안정적인 거래처를 찾을 수 있는 장소였다. 각 지역에서 온 도망자들로 북적이면서 이들은 서유럽 최초의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쾰른, 마인츠, 스트라스부르,.. 2024. 8. 10.
금융의 역사 40편 화폐의 발달 과정 서양 중세사2 서로마 화폐와 멸망 중세의 서막 서양 중세사2고대에는 전통적으로 금화나 은화가 화폐로 널리 사용되었다. 로마 제국의 솔리두스 금화와 영국의 소버린 금화 등은 국내외에서 흔히 거래되었던 화폐이다. 금화는 그 자체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어 신뢰도가 높았지만, 무게로 인해 휴대성이 떨어지고, 발행 과정이 복잡하여 지폐에 비해 발행량과 유통 속도가 부족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금을 보유하고, 화폐 가치를 금과 연동하여 신뢰성 높은 칭량화폐를 발행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즉 칭량화폐인 금속화폐는 금 교환증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화폐 체계를 금본위제라고 한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유럽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 속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혁의 시기 속에서 프랑크왕국은 .. 2024.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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