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발달 과정 일본 고대 근대사1 금융의 서막
현대 사회에서는 은행 중심의 금융업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금융의 국제화가 진행됨에 따라 국경을 초월한 금융관계가 더욱 현실적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금융 서비스와 업무는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금융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금융은 고대 사회에서 물물교환으로 시작해 점차 화폐경제로 발전하면서 본격적인 금융의 역사가 형성된다.
일본 화폐의 역사는 8세기부터 시작한다. 초기에는 쌀을 물품화폐로 사용하다가, 중국의 화폐를 참고하여 일본 화폐가 발전하게 되었다. 7세기부터 8세기 이전에는 상품화폐가 사용되었으며, 이는 휴대가 용이하고 중간재로 활용되어 소비재로 만들 수 있는 장점 덕분에 가치가 인정받았다.
당시 일본에서 사용된 상품화폐로는 쌀, 금가루, 화살촉 등이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조개껍데기가 보편적인 상품화폐였으나, 일본의 경우 쌀과 금가루, 화살촉이 사용된 것은 이들의 희소성 때문으로 추정된다. 일본 최초의 법정화폐인 와도카이친(和同開珎)은 708년에 도입되었다. 683년 4월 15일(덴무 12년)에는 일본에서 구리 주화 사용이 규제되었고, 708년부터 958년까지 다양한 동전이 생산되었다. 당나라 시대에는 일본과 중국 본토 간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졌고, 708년에 최초의 공식 동전이 생산되었다. 와도카이친은 금속 함량이 감소하면서 타락하게 되었고, 지역에서 모조품이 유행했다. 760년부터 일본의 금화와 은화는 금속 함량과 가치가 감소하여 큰 타락을 겪었다. 9세기 중반에는 8세기 초의 쌀 동전 가치가 7세기 가치의 1/150에 불과했다.
와도카이친 은화는 1961년에 다카무라 세이코 씨에 의해 금당 서쪽 수로에서 발견되었으며, 이 발견은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이끌어냈다. 와도카이친은 708년에 발행된 일본 최초의 유통화폐로, 은화는 708년 5월에 발행되어 이듬해 8월에 폐지되어 유통량이 매우 적고 희소했다. 발견된 은화의 지름은 24.4mm, 중량은 4.06g이며, 성분 분석 결과 은 함량은 88.66%, 유황은 9.01%로 확인되었다.
일본의 화폐 역사
에도 시대 이전의 화폐 주조와 유통 변화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초기 일본에서는 와도카이친이 중국의 ‘개원통보’를 본떠 제작되었으며, 화폐 단위인 '몬'은 후에 '몬메'로 변화했다. 그러나 나라(奈良)와 헤이안(平安) 시대에 주조된 황조12전(관전 12종)은 유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지방에서는 쌀이나 옷감이 화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958년에 주조된 겐겐타이호를 마지막으로 율령정부는 화폐 주조를 중단하였고, 이후 약 600년간 일본은 독자적인 화폐를 생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화폐 사용이 중단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화폐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도래전(渡)이 주로 사용되었고, 황조12전의 공급 부족과 정부의 신뢰도 하락이 도래전의 사용을 촉진했다.
가마쿠라 시대와 무로마치 시대에 접어들면서 도래전은 점차 황조12전을 대체하며 유통되었다. 특히 무로마치 시대에는 중국의 명전이 수입되었고, 일본 내에서도 화폐 재료와 주조 기술이 발전했다. 일본에서 중국전이 사용된 이유는 신뢰성과 권위 때문이며, 당시 일본의 정치 권력이 약해 통일된 화폐 발행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15세기 후반에는 중국의 화폐 부족과 왜구의 출현으로 인해 일본으로의 화폐 수입이 감소하였고, 기존 화폐는 마모되어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무역을 통해 사주전과 모조전이 수입되었지만, 이들 또한 열악한 화폐로 간주되었다. 마모된 화폐와 저급 화폐는 ‘비타센(悪銭)’으로 불리며 거래에서 거부되기도 했다.
결국, 도래전을 대체할 새로운 통일된 화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오반’과 도쿠가와 막부의 금, 은, 동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일본 경제가 중국 경제권에서 자립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낸다.
일본 근대 금융의 발전
일본 역사는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1568-1598)와 에도 시대를 근세로 구분하며, 에도 시대가 종료된 1868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를 근대, 그 이후를 현대로 나누는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의 시대구분을 따른다. 일본의 국가 발전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에도 시대의 금융업, 특히 초닌(町人) 금융의 성장하며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에도 시대에 발전한 료가에업은 근대 일본의 은행업의 기초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도쿠가와 시대의 오사카와 에도에서는 화폐 교환을 담당하던 료가에업이 상당히 발전하였으며, '은행'(銀行)이라는 용어도 일본에서 유래한다. 이는 이 시기의 금융업이 매우 발달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대차 제도
흉년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농민들이 다음 해 파종할 씨앗까지 먹어버리게 되자,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대출 제도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대출 이자에서 이익을 많이 얻으면서, 이 제도는 점차 강제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고, 결국 세금과 비슷한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일본 금융제도의 원형으로 고대 일본의 스이코(出)가 있다. 이는 농민이 봄에 파종할 때 쌀을 빌려 가을철 수확기에 일정한 이자를 붙여서 갚는 방식이었다. 스이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으며, 하나는 공스이코(公出)로, 각 지방정부의 창고에 저장된 관용쌀을 지방관인 고쿠시(司)가 빌려주는 형태였다.
헤이안 시대 말기 이후, 고리대금업자들이 등장하며 이들은 돈을 빌려주고 고리를 취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고리대금업은 '가시아게(貸上)'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사찰의 승려들은 농민들에게 공물을 고리로 빌려주었고, 만약 갚지 못할 경우 전답을 몰수하는 사례도 있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도소(土倉)'라는 전당포가 생겨나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가시아게를 대체하게 되었다. 도소는 상업 지역에 퍼져 무로마치 시대에는 약 300∼400건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자는 빌린 돈의 1배에 달하면 유질로 간주되었고, 고케닌은 영지를 매매하거나 전당잡히는 것이 금지되었으나, 경제적 궁핍으로 이를 어기는 경우가 많았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도소의 대부 이자가 매우 높아 연 4∼5할에 달했다. 이로 인해 변제 불능 상황과 농민 봉기가 잦아졌다. 중세의 신사와 절은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상인의 동업단체인 ‘자(座)’는 이들로부터 보호받았다. 사원 중심의 시가지가 발전하면서 신사와 절은 활발한 금융 활동을 하였고, 막부와 영주가 채권을 보호함으로써 채무 불이행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던 점도 이들의 금융활동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다.
송금 과정제도
일본 지역에서 멀리 있는 곳에서는 '가와세(替)' 라고하여 즉 환이 활용되었으며, 이는 주로 신사와 절의 경제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1264년의 고후쿠사 기록에 따르면, 도다이지와 고야산 등도 가와세를 통해 송금을 실행했다. 이 방식은 신사나 절의 소유지에서 발생하는 연공을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1311년, 빈고국의 관리인 지토는 요도 상인에게 판매 대금을 교토로 송금하기 위해 가와세를 이용했다.
14세기 후반에는 일반 상품의 판매 대금에도 가와세가 적용되었고, 이자를 포함한 가와세도 등장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교토의 귀족들은 가와세 증서를 발행하여 금전을 빌렸으며, 이는 지방 영토에서 나오는 공물로 상환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전문 가와세 업자도 등장하여 이 분야가 발전하게 되었다.
예대마진
에도 시대의 료가에상은 최초 일본 금융업으로 보며 이는 료가에상이 예금 업무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며 자금을 대출했다.무로마치 시대의 도소사카야를 살펴보면, 이들은 막부와 천황 가의 자금을 예치하고, 일반인에게도 이자를 제공하며 자금을 관리하였다. 도소사카야는 예금 및 대출 업무 외에도 가와세, 전화의 교환, 그리고 토지 담보 대출 등 다양한 은행 업무와 유사한 포괄적인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에, 이들을 일본 은행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결론
일본 화폐의 발전 과정과 근대 금융의 형성은 그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제공한다. 초기 화폐 사용에서부터 시작하여, 에도 시대의 금융업 발전까지의 과정을 통해 일본은 외부와의 교류와 내부의 변화에 적응하며 독자적인 금융 체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농민 대출 제도와 고리대금업의 발전은 사회적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일본의 금융 역사가 단순한 경제적 현상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사회적 현상을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 일본 금융 시스템의 기초와 그 발전 방향을 탐구하는 데 유익한 통찰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