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역사 4편 화폐의 통용 과정
이전 글에서 고려 말부터 물물교환 및 물품화폐 유통체제를 극복하고 명목화폐제도 도입을 시도를 했다. 조선왕조 시기 화폐 제도 발달의 과정에서 물품화폐 체계의 한계 극복 노력하였으나 저화(楮貨)와 동전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가치가 폭락하는 등 문제 등이 발생하였다. 결과적으로 전파하는 주요 목적은 화폐 통용의 안정적인 운영과 관리에 있다. 조선 시대 저화(楮貨)와 동전 유통을 통한 명목화폐제도 도입 노력에서 볼 수 있듯이, 화폐의 발행과 유통, 가치 관리를 통해 국가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도모하여 민가의 경제 활성화와 세수 증대를 통한 국가의 번영이 가능하다.
결국 조선왕조는 물품화폐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명목화폐제도를 정착시키고자 노력했지만, 당시 사회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근대 금융 제도 발전의 역사적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근세 중앙 집권국가의 화폐 및 경제체제 현실
조선시대는 전 중세인 고려시대보다 중앙정부에서 각 지방으로 관리를 파견하는 행정국가로 거듭나 중앙집권국가가 모습이 나타난다. 그래서 금융 제도의 발전이 가능한 상황에서 국가가 직접 통용을 목적으로 화폐인 저화(楮貨)나 동전은 초기에 민중에 외면을 받다가 금, 은을 국가가 매입하고 쌀의 환곡을 저화(楮貨)로 받아 신뢰성과 태환력을 높여 점차 보급이 되어간다. 하지만 내구성과 재질 자체의 문제점 특히 화폐의 신용이 떨어지는 것은 조선은 상업을 중시하는 국가가 아니라보편화가 어려웠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구리로 만든 동전을 주조하려고 하였으나 원료가 부족하여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1415년 당나라의 개원오수전을 참고하여 동전을 주조할 것을 결정한다. 그래서 조선통보를 만들어 저화(楮貨)의 보조수단에 목적으로 병용하기로 하였으나, 민중에 동요에 가능성 때문에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고 1423년에 보급화 된다. 1402년부터 시작하여 1423년 까지 약 21년 만에 병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동전의 발행하는 곳은 사섬서에서 관장하다가 점차 보급을 위해 각 지방의 주전소를 확충하여 동전을 주조하게 된다.
동전의 재질인 원료를 일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공급량이 부족하여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웠고 한계에 부딪히자 저화楮貨와 동전은 세공稅貢을하는 용도로 한정하게 된다. 이것도 국가가 세금의 납부 방식을 강제했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해진다. 하지만 민중들은 기존의 물품화폐에 대한 문화가 고착화되어 있고 민가의 상업이라는 것이 한정되어 있어 큰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아 외면받아 조선통보의 신용성은 더욱 추락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필수적인 생필품을 거래는 해야 하기 때문에 물물교환보다 물품화폐의 거래가 확산한다. 물품화폐인 베, 쌀에 의한 주류경제가 떠오르고 불가피하게 1426년 잡물(雜物)을 국가가 눈감아 주게 된다. 정부는 각 관아에 있는 베,쌀, 지역의 특산물등을 가지고 시장에 판매하고 법화인 저화나 동전을 회수하여 태환력을 강화하도록 노력했다.
근세 중앙 집권국가의 무역 화폐
전기 조선시대 세조 때는 고려의 풍습이 거이 사라지고 국제 무역에 대한 고립국가에 형태를 보여준다. 또한 금광채굴에 한계로 인한 금 은의 부족이 있을 수 있다. 당시 은본위제를 채택한 중국과 비교하여 조선시대의 상업이 보편화되지 않는 상태에서 저화나 동전이 무역 화폐로 사용하여 외국에서 국내로 태환력을 보장받을 수 없어 신뢰성이 떨어진 상황이다.
금은본위제에 단점은 경제의 확대 거래량의 한계로 작용된다. 무역의 화폐로 철촉鐵鏃을 법화로 하였다.보편성과 휴대성 이외에도 평상시에는 거래의 대상으로 사용하고 전시에는 원거리 무기로 사용하는 보완의 효과가 있다. 전폐를 법화로 하여 통용하려고 하였다. 전시 경제로 하여금 여진족과 전쟁을 지속하거나 반란이 일어나는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여서 당시 상황에 맞는 화폐로 고안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전쟁이 날 경우 화살촉으로 다 써버린다면 경기침체인 스태그네이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제마비가 올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물물교환이나 외화 대체 물품화폐가 사용되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 물품화폐의 연장선이라는 것는 기존의 정책인 명목화폐의 법제화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다. 이것은 기초경제와 사회 전반의 명목화폐의 통용 정책을 수반할 수 없는 미성숙한 경제 체제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근세 중앙 집권국가의 전기 평가
조선 전기의 화폐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역사적 경험은 조선 후기 동전 유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려와 조선 왕조는 6세기 동안 명목화폐 유통을 시도했지만, 사회경제적 여건 미비, 화폐 원료 공급난, 정책의 모순성 등으로 인해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은 조선 후기 동전이 법화로 유통되는 데 기여했다.
구체적으로, 고려와 조선 왕조가 명목화폐 유통을 위해 노력했던 역사적 경험은 조선 후기 동전 유통에 긍정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이 과정에서 축적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은 조선 후기 동전 유통 활성화에 밑거름이 되었다.
따라서 조선 전기의 화폐정책 실패는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조선 후기 동전 유통의 기반이 되었으며, 이는 화폐제도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