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역사 35편 서양 고대사13 로마와 카르타고
로마 시대의 그리스는 기원전 146년 코린토스 전투에서 로마가 승리한 이후부터 기원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티움을 새로운 수도로 삼을 때까지의 기간을 포함한다. 마케도니아가 로마 속주로 편입되면서 그리스 반도는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일부 도시들은 부분적인 독립을 유지하려 했다. 기원전 133년 에게해 제도가 로마령으로 편입되었고, 기원전 88년 아테네 등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로마 장군 술라가 그리스 반도를 파괴했다. 이후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27년 이 지역을 아카이아 속주로 지정했다. 로마 문화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으며 이 지역은 제국의 중요한 동부 속주가 되었고, 그리스어는 동방과 이탈리아의 공용어로 자리 잡았다. 또한, 여러 그리스 지식인들이 로마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역사 속에는 광대한 영토와 인구, 군사를 거느린 수많은 제국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제국들이 처음부터 이러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작은 시작점에서 출발해 주변 세력과 싸우며 점차 역사에 남는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고대 서양 역사상 최대의 제국 중 하나인 로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원전 7세기 티베리스강 하류의 라티움에서 시작한 로마는 오랜 세월 동안 인접 국가들을 정복하며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다. 특히 포에니 전쟁은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지중해의 패권을 손에 넣으며 제국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지중해. 많은 문명국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지중해의 동부와는 달리 서부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고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전이 벌어지던 무대에서 조금 벗어난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라틴족의 작은 도시인 로마가 주변 세력을 하나씩 정복하며 세력권을 확장하고 있었다. 로마는 북쪽의 에트루리아와 주변의 삼니움을 정복했고, 이탈리아 반도에 진출해 있던 그리스 식민 도시들도 로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해상 무역 카르타고
카르타고는 로마보다 일찍 역사에 등장했다. 기원전 두 번째 천년기 중, 페니키아인들은 현재의 레바논 북부와 남부에 걸쳐 있는 좁고 긴 땅에서 살며 뛰어난 항해 능력을 발휘했다. 그들은 금, 은, 철, 주석, 납을 구하기 위해 서쪽으로 눈을 돌려 목재, 보라색 염색 천, 향수, 포도주, 향신료 등의 물품과 교환했다. 서쪽으로 이동한 페니키아인들은 아프리카 해안, 시칠리아, 사르데냐, 스페인 남부에 정착지를 세웠다. 스페인 남부의 정착지는 성서에서 다시스로 언급된 곳으로 추정된다. 전승에 따르면, 카르타고는 로마보다 약 60년 앞선 기원전 814년에 설립되었다. 북아프리카 고대사 전문가 세르주 랑셀은 "기원전 9세기 말 카르타고의 탄생은 서부 지중해 국가들의 정치적·문화적 운명을 수백 년 동안 결정지었다"고 말다.
카르타고는 해양 민족인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한 도시로, 배를 타고 지중해 각지를 돌아다니던 그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페니키아인들은 현재의 레바논 지역에서 기원전 3300년경에 이미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2000년대를 거쳐 1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지중해 전역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페니키아인들의 영향력은 지중해 세계에 매우 컸다. 예를 들어, 페니키아 문자는 그리스로 건너가 그리스식 '알파벳'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페니키아인들의 뛰어난 항해 능력은 여러 제국들에게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를 침공할 당시, 해군이 없던 페르시아는 페니키아의 함선과 선원을 동원해야 했다. 페니키아인들은 거대한 나라를 세우는 것보다 부(富)의 축적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배와 선원들을 거대 제국들에게 빌려주는 대신 그들의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는 육군 중심의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으며, 카르타고는 해양 무역과 상업을 중심으로 한 문명이었다. 이러한 차이도 두 나라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양국은 여러 차례 외교적 갈등을 겪으며 서로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모두 지중해 지역에서 패권을 장악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시칠리아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두 강대국 간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카르타고는 전통적으로 해양 무역을 통한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지중해 무역로와 항구를 통제하려는 경제적 이익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모두 상업과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서로의 영향력을 줄이려 했다.
1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64년 ~ 기원전 241년)
전쟁에 돌입한 로마와 카르타고는 기원전 265년에 메사나에서 충돌했다. 로마군은 카르타고-시라쿠사 동맹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이는 완전한 승리라고 할 수 없었다. 카르타고 지휘관 하노와 시라쿠사의 히에로 2세가 메사나를 포기하고 물러난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전투는 기원전 262년, 로마군이 현재 시칠리아 남부의 도시 아그리겐툼(현 아그리젠토)을 포위하면서 시작되었다. 카르타고군은 아그리겐툼을 시칠리아 주둔군의 주요 거점으로 삼았고, 로마군은 이를 점령하려 했다. 이 싸움에서 한니발 기스코와 그의 아들은 로마군을 유인해 싸우려 했지만, 작전이 간파되어 협공을 당해 패배했다.
아그리겐툼 전투 이후, 카르타고군은 육지에서 로마군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해전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그러나 기원전 260년의 리파라 군도 해전을 제외하면 해전에서도 로마가 승리했다. 당시 지중해 해전은 화살을 주고받다가 상대의 배를 들이받아 침몰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리파라 해전에서 패배한 후, 로마는 배에 코르부스(corvus)라는 장치를 장착했다. 이는 긴 나무판자의 끝에 뾰족한 송곳이 박힌 장치로, 로마 함선이 카르타고 함선에 접근해 코르부스를 밀면 송곳이 갑판에 박히게 되어 카르타고 배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때 로마 병사들이 코르부스를 통해 적선에 올라타 카르타고 선원들을 공격했다. 카르타고는 코르부스를 장착한 로마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패를 당했다.
이후, 카르타고는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의 침공을 받았다. 로마군은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며 카르타고 본성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카르타고가 고용한 그리스 출신 장군 크산티푸스가 지휘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크산티푸스는 현재 튀니지의 전투에서 로마군을 대파했고, 도망치던 로마군도 폭풍으로 인해 모두 익사하면서 로마의 카르타고 본토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전투들은 해전을 포함해 모두 로마의 승리로 끝났다. 시칠리아에 다시 파견된 카르타고군을 지휘하던 대 한노는 아에가테스 해전에서 로마에 완패하며, 카르타고는 로마와 휴전협정을 맺고 시칠리아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1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육전에 강했던 로마가 천년 넘게 바다를 지배하던 해양 세력을 해전에서 물리친 것이다. 당시 해전의 주된 전술이었던 충파 대신, 코르부스를 이용해 육상 병력을 함상에서 싸울 수 있게 한 로마의 전술적 창의성이 빛을 발했다. 이로써 반도에만 머물던 로마 세력은 처음으로 이탈리아 본토 밖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포에니 전쟁의 배경과 결과
전쟁의 발단은 기원전 265년 메사나에서 로마와 카르타고의 충돌로 시작되었다. 로마군은 카르타고-시라쿠사 동맹군을 상대로 승리했으나, 이는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본격적인 전투는 기원전 262년 아그리겐툼 포위전으로 시작되었다. 이 전투에서 로마는 승리했으나, 카르타고군은 해전으로 전략을 전환하였다. 로마는 해전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시칠리아를 점령하였습니다.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은 로마가 코르부스를 도입하여 해전에서 카르타고를 압도한 것이었다. 결국, 기원전 241년 아에가테스 해전에서의 패배로 카르타고는 로마와 휴전협정을 맺고 시칠리아를 포기하게 되었다.
1차 포에니 전쟁의 결과 로마의 도약과 카르타고의 후퇴가 되었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처음으로 본토 밖으로 진출하며 지중해 패권의 기틀을 다졌다. 로마는 전술적 창의성을 발휘해 해상에서도 강력한 군사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고, 이는 이후 로마 제국의 확장과 번영의 토대가 되었다. 반면, 카르타고는 해상 무역의 중요 거점을 상실하며 로마와의 패권 경쟁에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