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스파르타 정치 경제 문제 서양 고대사12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의 승리는 스파르타에게 군사적 위상을 부여했지만, 그와 동시에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스파르타의 정치 체제는 고대 그리스에서 독특한 군주제와 귀족제의 혼합 형태였다. 전쟁 이후, 권력을 가진 소수의 귀족들이 이익을 추구하면서 정치적 부패가 심화되었다. 이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이익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스파르타 시민들은 전쟁의 고통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귀족과 군 지도자들의 부패를 목격하며 불만이 쌓였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세금 부담은 일반 시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스파르타는 군사적 승리를 위해 많은 자원을 소모했으며, 이를 위해 외부로부터 공납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공납금은 제국 내 다른 폴리스에서의 반발을 초래했고, 경제적 기반이 약화되었다. 내부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부 지원에 의존하게 되자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스파르타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지만, 전쟁 이후 군대의 질이 저하되었다. 시민 수의 감소와 군사 훈련의 소홀로 인해 군대의 전투력도 약화되었고, 이는 외부의 위협에 대한 방어 능력을 저하시켰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스파르타는 부패와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결국 그리스 내에서의 지배력을 잃게 되었다.
다시 일어나는 분열의 조짐
기원전 404년, 아테네는 항복하고 스파르타의 리산드로스에 의해 30인 과두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이 과두정부는 이듬해인 기원전 403년에 민중들의 저항으로 무너졌고, 여러 차례의 내전에서 승리한 트라시불로스와 그의 세력은 민주정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스와 인근 페르시아의 도시국가들은 결코 영원한 동맹이 아니었고, 가장 강력한 세력이 나타나면 다른 국가들이 연합하여 그에 맞서곤 했다. 아테네가 가장 강력했을 때는 스파르타가 그 아래로 모였으나, 아테네의 몰락과 스파르타의 패권 강화로 인해 이제는 아테네의 부흥을 돕기 위한 동맹이 형성되었다. 특히 아테네의 오랜 적인 테베가 아테네를 지원하고, 페르시아 또한 스파르타를 공격하게 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스파르타에 대한 원한을 가진 작은 도시국가들과 아테네가 연합하여 제2차 델로스 동맹을 맺었다. 이 동맹은 과거와 달리 아테네가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재정적으로 지원하며 연합군대를 편성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아테네가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다.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에서의 패배와 내부의 동요가 아테네의 성장을 저해했다. 특히 30인 과두정부의 붕괴 이후 들어선 새로운 민주정부는 직접민주주의의 폐해로 인해 중우정치에 빠져들게 된다. 트라시불로스가 바람직한 민주주의를 만들고자 했으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결론이 아닌 특정인을 마녀사냥하고 책임을 돌리는 냄비현상으로 변질되었다. 민중의 분노에 휘둘리는 감정적인 정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패권 전쟁 서막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를 물리치고 그리스의 최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아테네의 영토를 흡수하여 제국을 형성했지만, 이는 스파르타에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군대가 필요했는데, 스파르타의 완전 시민 수가 제한적이어서 대군을 육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대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필수적이었으나, 스파르타는 자체적으로 이를 충족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러 곳에서 상납금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후 스파르타는 각 폴리스에 군대와 관리들을 파견하여 강압적으로 통치하며 많은 공납금을 징수했다. 이로 인해 아테네 시절보다 더 심한 세금이 부과되면서 각 폴리스에서는 스파르타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제국에서 들어오는 부는 스파르타 내부의 계층 분화를 가속화시켜 국가 체제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다.
테베는 전통적으로 보이타이 지방의 맹주였으나, 스파르타의 패권 아래에서 정치적 역할이 축소되었다. 친 스파르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자, 많은 테베 정치인들이 아테네로 망명하게 되었고, 그중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가 주도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친 스파르타 세력을 몰아냈습니다. 그 후 테베와 스파르타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테베는 방어적으로 나서며 전투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스파르타 군이 북부의 칼시디아 연맹을 상대하기 위해 보이타이 지방에서 빠지자, 테베군은 신성부대 300명을 파견하여 스파르타가 점거한 테기라를 해방하려 했다. 그러나 스파르타 군의 수가 예상보다 많아 후퇴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소규모 전투가 발생했다. 이 전투에서 테베의 신성대는 스파르타군을 물리치며 스파르타의 명성을 실추시켰다.
이 승리로 테베의 정치적 입지는 강화되었고, 보이타이 연맹이 재결성되었다. 이후 4년 후,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스파르타에서 평화협정을 논의하게 되었고, 에파미논다스가 보이타이 연맹의 지배권을 인정받으려 하자 스파르타 왕 아게실라오스가 거부했습니다. 협상이 결렬되자 스파르타 군은 테베로 진군할 준비를 했다. 에파미논다스는 테베로 돌아와 병력을 모았으나, 가용 병력이 제한적이었다. 스파르타 군이 남서쪽에 접근하자, 그는 방어 대신 요격 작전을 선택하게 되었다.
결국 기원전 395년, 아테네와 북쪽의 테베를 포함한 여러 폴리스가 연합하여 스파르타를 공격했다. 아테네는 해상권을 회복하기 위해 기원전 378년에 제2차 해상동맹을 결성했다.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겨우 지배권을 유지했지만, 기원전 371년에 테베가 스파르타 군대를 상대하여 승리하게 된다. 이 승리로 테베는 스파르타의 식량 창고인 메세니아를 독립시켜, 스파르타가 더 이상 그리스의 지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테베 역시 부유한 폴리스가 아니었고, 그리스를 장기간 지배할 힘이 부족했다. 그 결과, 기원전 362년 이후 그리스의 여러 강국들 간의 세력 경쟁으로 인해 전체 그리스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스파르타가 패권국이 된 후 1년 만에 아테네는 민주정을 복구했고, 이후 코린트와 테베가 손을 잡아 스파르타에 대항하는 코린토스 전쟁을 일으켰다. 이는 스파르타의 동맹국 차별로 인해 발생한 반발이었다. 스파르타는 지상전에서는 우위를 점했지만, 아테네와의 해상전에서 패배하며 2차 델로스 동맹이 결성되기도 했다. 이후 스파르타에 반기를 든 세력들이 나타났고, 결국 테베군이 에파미논다스의 지휘 아래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군을 크게 무찌르며 전술적으로 혁신적인 사선대형을 활용했다. 테베군은 우익을 강화하여 스파르타의 강력한 정예를 먼저 무너뜨리는 전략으로 승리하였다.
스파르타는 문화적,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태였다. 시민들은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신체 단련과 무술 연마에만 집중해야 했다. 집과 왕궁조차 투박한 구조였으며, 상업 활동은 거의 없었다. 이는 전설적인 입법가 리쿠르구스의 법에 의해 무쇠 동전만 사용하도록 강제되었기 때문이다.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의 쇠퇴를 예견하며 그들의 역사적 위상을 비관적으로 평가했다.
스파르타가 군사 강국으로 알려진 이유는 이러한 극단적인 생활환경 때문이었지만, 결국 쇠퇴하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주요 요인 중 하나는 BC 371년 레욱트라 전투에서의 패배로, 테베 군의 에파미논다스의 지휘 아래 스파르타 군이 무너졌다. 스파르타는 전투에서 도망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 전투에서는 왕의 시신을 두고 도망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스파르타의 시민 수가 적어 처형할 경우 국가가 존립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스파르타의 군사적 위상이 크게 흔들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 패권의 구도의 결말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가 결정적 패배를 당하면서 패권을 상실했다. 이후 테베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원정을 시도했으나, 아테네의 방어로 일부 저지되었고, 테베는 스파르타의 종속 지역인 메시니아를 해방시키며 스파르타를 약화시켰다. 그러나 테베도 패권을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기원전 362년 만티네아 전투에서 에파미논다스를 포함한 많은 장군들이 전사하면서 힘을 잃게 되었다.
한편,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는 군제 개혁을 통해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고,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대파하여 그리스 전체를 통합했다. 필리포스 2세가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마지막 저항을 분쇄하고, 테베는 기원전 335년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마케도니아는 여러 조각으로 쪼개졌지만, 여전히 그리스에서 패권을 유지했다.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로마의 부상에 저항하며 도움을 요청했으나, 로마는 마케도니아를 정복한 후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이에 코린토스가 이끄는 아카이아 동맹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로마에 의해 분쇄되었고, 코린토스는 철저히 약탈당하며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사실상 로마의 속주로 전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