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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역사 28편 화폐의 발달 과정 서양 고대사6

by cellife 2024.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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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역사 28편 고대 그리스 문명 서양 고대사6

서양 문화의 뿌리인 그리스 문명은 에게 문명에서 시작됩니다. 에게 문명은 청동기 시대에 그리스와 에게해 지역에서 발전한 문명으로, 크레타섬,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스 본토의 상호 교류를 통해 형성되었다.  이후 도리아인의 침략으로 기원전 1200년경 종말을 맞고, 그리스는 기원전 8세기까지 암흑기를 겪었다.

 

초기에는 크레타섬에서 미노스 문명(크레타 문명)이 등장하고, 키클라데스와 그리스 본토에서도 독자적인 문화가 발전했다. 이후 헬라딕 시대에 키클라데스 문명이 그리스 본토로 확장되었으며, 중기 미노스 시대에는 크레타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1450년부터는 미케네 문명이 크레타에 진출하게 된다.

 

이 시기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이 철기 시대로 접어들며 지중해에 영향을 미쳤고, 그리스 문명은 이러한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흡수하여 더욱 발전하게 된다. 기원전 8세기 중반부터 폴리스라는 도시 국가가 형성되면서 그리스 문명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각 폴리스는 독립적이면서도 공통의 언어와 신앙을 공유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최초의 도시인 우루크가 인류에게 도시화와 문자 체계를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우루크가 확장됨에 따라 도시의 행정을 관리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 중 하나는 점토판에 적힌 영수증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문명

에게해 문명

기원전 7000년부터 3000년까지의 석기 시대와 기원전 3000년부터 1000년까지의 청동기 시대 문명이 번성했다.  그리스와 에게해 지역에는 여러 청동기 시대 문명이 존재했다  레타섬,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고 그리스 본토의 세 가지 주요 지역에서 발전한 문명들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청동기 시대 초기, 크레타섬에서는 미노스 문명, 즉 크레타 문명이 형성되었으며, 키클라데스 제도와 그리스 본토는 각각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초기 헬라딕 시대에는 키클라데스 문명이 그리스 본토로 영토를 확장하였고, 중기 미노스 시대에는 크레타섬에도 그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1450년경부터는 후기 헬라딕 시대와 후기 미노스 시대에 걸쳐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이 크레타에 진출하게 된다.

 

초기 문화의 흔적이 그리스 본토에서 구석기 시대 사냥꾼들이 만든 돌 도구로 나타나지만, 크레타 섬 등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BC 1만 3000년경, 아르고스 만의 프랑크티 동굴 발굴을 통해 크레타 북쪽 멜로스 섬까지 배가 왕래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잡곡 재배와 가축 사육, 조직적인 다랑어 잡이도 시작되었다.

 

미노스 문명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족속이 도래한 이후 크레타 섬에서 시작되어 에게해의 도서지방으로 확산된 청동기 시대의 문명이다. 미노스 문명의 배경에는 기원전 3000년경 크레타 섬의 활발한 교역이 있다. 크레타 섬은 그리스 연안의 여러 섬들과 구리를, 아시아 소규모 국가들과 주석을 교역하였으며, 이 두 자원은 청동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교역로 덕분에 미노안들, 즉 크레타 섬의 주민들은 경제적 이점을 얻고 힘을 강화할 수 있었다. 

 

크노소스의 궁전은 기원전 2000년경에 건축되었으며, 기원전 1750년경 지진으로 파괴된 후 더욱 호화롭게 재건되었다.이 궁전은 복잡한 구조와 발달된 배급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으며, 전설 속의 라비린토스가 이곳에 위치한 것으로 여겨진다. 궁전은 기원전 1400년경 대지진 또는 미케네인의 침략으로 최종적으로 파괴되었다.

 

미노스인은 해상 무역에 종사하며 뛰어난 도자기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미노스 사회는 전반적으로 활기차고 부유했으며, 상류층은 쾌적한 생활을 영위했다. 미노스의 예술은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며, 인간성과 개성이 가득한다. 바다, 태양, 나무, 꽃, 축제, 스포츠 등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되었다. 미노스 예술은 고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곧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궁전의 프레스코화가 미노스 예술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기원전 2700년에서 1500년경에 번성하였으며, 그 후 미케네 문명이 크레타를 지배하게 되었다. 미노스 문명은 큰 위기를 겪었는데, 기원전 1525년 산토리니 섬에서 발생한 화산 폭발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쓰나미는 도서지방의 저지대 주민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후 기원전 1450년경, 미케네인들이 크레타 섬에 침입하여 크노소스(Knossos) 도시를 점령했다.

 

 

크레타 문명

BC 1600년부터 BC 15세기 말까지 절정에 이르렀으나, BC 1500년경 테라 섬의 화산 폭발과 그에 따른 지진으로 많은 도시와 마을이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크노소스와 북부 해안의 마을들이 해일에 휩쓸렸고, 후세의 그리스 전설인 데우칼리온의 대홍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BC 15세기 중반에도 크레타는 일정 기간 번영했으나, 중부와 남부의 주요 도시들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사회 질서가 붕괴되었다. 이 시기에 발견된 유물들은 이미 약탈당한 것으로 보이며, 이들은 본토에서 온 정복자들일 가능성이 있다. BC 14세기와 13세기에는 왕 중심의 계급사회가 형성되었고, 지방 관리들이 이끄는 군대와 도로망이 존재했다. 이후 본토 그리스인들이 크레타 이주민들을 대신하게 되었고, 히타이트 문헌에서는 그리스인들을 아히와야로 기록했다. 유명한 트로이 전쟁은 이러한 시대적 갈등을 반영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미케네 문명

필로폰네소스 반도의 미케네를 중심으로 발전한 그리스 청동기 문명으로, 기원전 1700년경부터 시작되어 기원전 1500년에서 1300년 사이에 가장 번성했습니다. 주요 도시로는 미케네, 아테네, 테베가 있으며, 이 문명 사람들은 최초의 그리스인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그들이 그리스어를 처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어는 미노스 문명의 선형A 문자를 발전시킨 선형B 문자로 기록되었다.

 

미케네 문명에 대한 자료는 제한적이며, 주로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의해 전해집니다. 아가멤논, 트로이 전쟁, 헤라클레스의 12가지 시련 등은 모두 미케네 문명 시기에 발생한 사건들로 여겨지지만, 이를 뒷받침할 유물이나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티린스와 필로스 지역에서는 미케네 문명 시기의 궁전 유적이 발굴되었습니다. 특히 티린스의 궁전은 왕좌가 있는 응접실로 유명하며, 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도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 역사 정리

도시의 기원은 신전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신을 섬기기 위해 모이면서, 이들을 부양하기 위한 농장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인 잉여 식량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다양한 필요를 창출하게 되었다. 그 결과, 장식품을 제작하는 기술자나 식량 거래를 위한 회계사와 같은 새로운 직업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시는 점점 성장하게 되었고, 공동의 목표 아래 시작된 도시가 점차 중앙집권화되면서 심각한 불평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19세기 중반,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와 여러 고대 성채를 발견하면서 에게 문명의 존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어서 아서 에반스는 크레타섬에서 미노스 왕의 궁전인 크노소스를 발굴하고, 선형 문자로 기록된 점토판 문서들을 발견했다. 1952년 벤틀리스는 선형 B 문자를 해독하여 미케네 문명에 대한 연구가 진전을 이루었다. 결과적으로, 에게 문명은 미노스 문명과 미케네 문명으로 크게 나뉘며, 이 두 문명은 그리스 문화의 기초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중심이 되었고, 스파르타는 군사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두 도시 국가 간의 경쟁은 결국 27년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고, 스파르타가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 동안 테베가 힘을 기르고 스파르타를 꺾어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한다. 그러나 테베 또한 아테네-스파르타 연합군에 패하고, 그리스는 권력 공백기를 맞이한 후 마케도니아에 의해 멸망하며 알렉산드 대왕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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