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역사 2편 화폐의 발달
한반도의 화폐 발달 과정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이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각 시대의 특성을 반영한 독특한 화폐 시스템이 존재했다. 이 글에서는 한반도의 화폐 발달 과정을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한반도의 화폐의 발달 과정
한반도 선사시대의 교환수단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부족하지만, 자급자족하는 경제생활을 거쳐 물물교환이 주를 이루었고, 무기, 생산도구, 부속품, 가축, 곡물 등이 교환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철이 주요한 교환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변한은 철을 생산하여 일본으로 수출하였는데, 이는 중국의 화폐처럼 철을 사용한 것이다. 동옥저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문양이 없는 금은화(무문전)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에는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야금과 수공예 기술이 발달하면서 상업도 함께 발전했다. 이 시기에는 쌀, 기장, 보리 등의 곡물과 린넨, 모시, 비단 등의 직물이 국가의 세금 납부와 지출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일반 유통계에서는 상품 화폐로 통용되었다. 또한 금, 은, 철 등의 귀금속이 양적 통화로서 기능했다.
특히 신라에서는 금과 은 세공업이 발달하여 금화와 은화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구체적인 주조와 유통 조건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
한반도에서 물물교환과 상품화폐가 주를 이루던 시기에 중국에서 발달한 화폐경제의 영향으로 다양한 중국 화폐들이 한반도로 유입되었다. 명도전(明刀錢)과 군전(布錢), 한나라 오수전(五銖錢), 왕망 시대 화폐 등 중국 고대 동전이 한반도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삼국시대에는 중국과의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당나라의 개원통보(開元通寶)와 같은 중국 화폐가 대량으로 유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출토된 화폐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중국 화폐가 일부 계층이나 한정된 유통계에서만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국가 차원의 정책을 통한 화폐 유통을 시도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교환수단으로 사용된 철, 동옥저와 신라에서 사용된 금과 은의 무문전은 국가가 품질과 형식, 무게를 표준화하여 만든 화폐가 아니라, 물물교환이 지배적인 원시적인 자연경제체제에서 사용된 것이다 실질적인 상품화폐와 같은 성격을 지닌 칭량화폐라고 볼 수 있다.
중세 중앙집권 국가의 화폐 발달 과정
화폐사상에서, 정책적으로 원시자연 경제체제의 물물교환 또는 물품화폐 유통 체계를 극복하고 품질, 체재, 무게를 표준화한 화폐를 주조하고 유통시키는 노력이 있다. 최초의 시도는 996년(성종 15)에 철전을 주조하고 유통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명목화폐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시도는 철전을 주조하고 유통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고려 시대부터 주화인 건원중보(乾元重寶)가 둥근 모양이었다. 중국의 진시황제가 화폐 디자인을 원형방공(圓形方孔)으로 통일한 것도 이러한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 숙종 때 의천이 왕에게 동전 제작을 건의하면서 둥근 것은 하늘이고 모난 것은 땅이라는 철학적 배경을 설명한 것에서도 알수 있다. 물론 외국에서는 다각형 모양의 주화도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원형 주화에 대한 고유한 철학적 사고가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 자동판매기 등의 교체 비용 문제로 인해 새로운 주화 도입 시에도 원형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주화에 대한 원형 선호도는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사고, 그리고 현실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법정화폐를 도입하여 국가의 재정을 통제하고, 상품화폐의 사용을 제한하여 국가의 중요한 경제요소 중 하나인 화폐를 중앙에서 통제하고, 동전을 법정화폐로 만들어 유통하여 국가가 화폐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고려의 화폐 정책 변화는 996년에 철전을 주조하여 1062년까지 유통시켰다. 그러나 철전은 물품화폐에 밀려 점차 기능을 잃게 되었다. 1097년 숙종 때 주전관을 두어 화폐 주조와 유통을 담당하게 하고, 1102년부터 해동통보 등 다양한 동전을 발행하려 했다. 하지만 동전은 통용 범위가 제한적이었고 물품화폐에 구축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1101년 숙종 때 은병이 법화로 주조,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고려 화폐 정책에 있어 전환점이 되었다. 은병은 일정한 통용가치가 보장되었으나 위조품이 나타나면서 가치가 하락했다. 고려는 은병의 순도를 높이는 등 안정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쇄은도 품질이 나빠져 14세기 중반에는 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고려의 화폐 정책은 비금속화폐와 귀금속화폐 모두 실패로 끝났고, 물품화폐 중심의 유통 체제가 지속되었다.
결론 고려 왕조는 물품화폐 유통을 극복하고 명목화폐 제도를 도입하려 했지만, 철전, 동전, 은병, 쇄은 등 다양한 화폐를 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이로 인해 고려 말에는 포화 등 물품화폐가 지배적이었고, 1391년 저화제 도입도 실패로 끝났다. 이는 고려 왕조가 화폐 제도 개혁을 통해 원시적 유통 질서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결론
한반도의 화폐 발달 과정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물물교환과 상품화폐가 주를 이루었으며, 중국 화폐의 유입으로 인한 영향도 있었다. 고려 시대에는 국가가 화폐 제도 개혁을 시도했지만, 철전, 동전, 은병, 쇄은 등 다양한 화폐 발행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이로 인해 고려 말에는 포화 등 물품화폐가 지배적이었고, 저화제 도입도 실패로 끝났다. 이는 고려 왕조가 원시적 유통 질서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한반도의 화폐 발달 과정은 경제, 정치,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각 시대의 특성을 반영한 독특한 화폐 시스템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