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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역사 12편 화폐의 발달 과정 중국 근대사1

by cellife 202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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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발달 과정 중국 근대사

조개를 화폐로 사용하는 시대를 거쳐 금속 화폐가 등장하게 되었다. 한나라 시대에는 중앙에 네모난 구멍이 뚫린 둥글고 평평한 형태의 동전이 일반적인 화폐로 자리 잡았다. 이 동전의 형태는 중국 전통 사상인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후대에 부여된 의미로 보인다. 실제로는 동전을 끈이나 막대기에 꿰어 여러 개를 동시에 다루기 위한 실용적인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전은 주조 과정에서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 거푸집은 흙이나 돌에 동전 형태를 여러 개 새겨 넣어 한번에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동전을 주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주조된 동전은 가장자리에 쇳물의 잔여물이 남아 매끄럽지 않았기 때문에, 끌과 같은 도구로 다듬어 사용해야 했다. 개별 동전을 다듬는 것은 많은 시간과 인력을 소모하므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개의 동전을 막대기에 꿰어 한 번에 다듬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동전의 구멍이 둥글면 막대기가 자유롭게 움직여 제대로 다듬기 어려웠다. 그래서 동전의 구멍을 네모나게 뚫어 서로 단단히 고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에는 칼 모양의 도폐(刀幣)나 삽 모양의 포폐(布幣)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화폐가 등장했다. 왕망(王莽) 시기에는 현재의 열쇠처럼 생긴 오수전(五銖錢) 등 여러 형태의 화폐가 발행되었으나, 날카로운 모서리로 인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고, 무게가 무거워 휴대하기 불편해 오랫동안 사용되지 못했다. 그 후 방공원전(方孔圓錢), 즉 가운데에 네모난 구멍이 있는 둥근 동전이 등장하여 오랜 시간 동안 화폐의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원(元)과 명(明) 시기에는 잠시 지폐도 사용되었으나,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이후 구멍이 없는 원전(圓錢)이 등장하면서 금속 화폐의 최종 형태가 확립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화폐 발행의 이유는 다양했다. 새로운 왕조가 세워질 때 개국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는 경우가 많고 같은 왕조 내에서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그의 즉위를 기념하여 새로운 연호 화폐를 발행하기도 했다  재정이 부족할 때 임시방편으로 화폐를 남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잦은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재정이 고갈되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품질이 낮은 화폐를 대량으로 발행하여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화폐 가치의 급락을 겪은 후에는 다시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여 위기를 넘기려 했던 것이다

 

 

중국 금융의 발전 근대사

 

진나라의 시황제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인물로, 그 이전에는 제, 연, 조, 한, 위, 초, 진 등 일곱 개의 국가가 전국시대를 이루고 있었다. 이 시기에 진나라는 다크호스처럼 부상하여 통일의 성과를 이루었다. 이러한 진나라의 승리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여러 가지 원인을 분석해왔지만, 특히 경제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화폐의 통일이다. 진나라는 기원전 336년, 당시 지방 정부에 불과할 때 반량전(半兩錢)을 주조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이미 여러 세력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화폐가 만들어지고 있었으나, 이들은 가치와 형태가 제각각이어서 사용이 불편했다. 그러나 진나라는 일관된 형태와 가치를 가진 반량전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했으며, 다른 나라 화폐의 사용을 금지했다. 이러한 '공정화폐'의 도입은 당시 7개국 중 진나라만의 혁신이었다.

 

화폐의 통일은 유통을 촉진하고 도시의 발전을 이끌었다 정부 입장에서도 세금 징수와 군비 조달이 용이해지며, 수입이 크게 증가했다. 반량전은 원형 동전으로 가운데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어, 끈으로 묶어 들고 다니기 쉽게 설계되었다.

이러한 형태는 아시아에서 특징적이며, 일본의 화폐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118년, 전한의 무제에 의해 만들어진 오수전(五銖錢)도 반량전의 형식을 그대로 따랐으며, 700년 이상 사용되었다.

 

중국은 이후에도 화폐 주조에서 선구자 역할을 계속했다. 전한 무제 때 오수전이 약 120년 동안 280억 개가 주조되었고, 이는 연간 2억 개 이상에 달했다. 이러한 대량 생산은 고대 중국의 뛰어난 금속 가공 기술 덕분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미 철광석을 녹여 주조하는 방식이 사용되고 있었고, 이는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반면, 고대 다른 지역에서는 단조 방식만 사용되었다.

 

10세기 북송 시대에는 동전과 철전의 주조소가 37곳과 44곳에 각각 설치되어, 150년 동안 2,000억 개에서 3,000억 개가 주조되었다. 특히 왕안석이 재상으로 있던 시기에는 연간 60억 개의 동전과 10억 개의 철전이 만들어졌다. 북송의 동전은 조선, 일본, 베트남 등지로 수출되었으며, 이들은 국제통화로 자리 잡았다. 또한, 고대 중국에서는 이미 환어음이 사용되고 있었다. 당나라 시대에 등장한 '비전(飛錢)' 시스템은 상업 발전과 함께 멀리 떨어진 지역과의 거래를 용이하게 했다. 상인들이 동전을 외환업자에게 맡기고 보관증을 발급받아 이를 통해 상품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오늘날의 외환은행 시스템과 유사한 형태로 발전하였고, 나중에는 국영 외환은행으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화폐 시스템과 금융 기술의 발전은 고대 중국 경제의 기초를 다지며,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 금융 근대사 요약 정리

 

화폐 발달 과정


초기 화폐: 조개를 화폐로 사용하다가, 한나라 시대에 중앙에 구멍이 뚫린 둥근 동전이 일반화됨.
주조 기술: 동전은 거푸집을 사용해 대량으로 주조되었으며, 효율성을 위해 동전의 구멍을 네모나게 만들어 서로 고정할 수 있도록 함.


다양한 형태의 화폐: 칼 모양의 도폐, 삽 모양의 포폐 등 다양한 형태가 등장. 이후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있는 동전이 일반화됨.
화폐 발행 이유: 새로운 왕조의 개국 기념, 즉위 기념, 재정 부족 시 임시 발행 등 다양한 이유로 화폐가 발행됨.

 

중국 금융 발전

 

진나라의 통일: 기원전 336년에 반량전을 주조하며 화폐를 통일. 이는 경제적 요인이 진나라의 승리에 기여함.
화폐 유통 촉진: 통일된 화폐는 세금 징수와 군비 조달을 용이하게 하고, 도시 발전을 이끌어냄.
대량 생산: 전한 무제 시기에 오수전이 대량으로 주조되었으며, 이는 고대 중국의 뛰어난 금속 가공 기술 덕분.
상업 발전과 환어음: 북송 시대에는 동전과 철전의 대량 주조가 이루어졌고, 당나라에서는 비전 시스템이 등장하여 상업 거래를 용이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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